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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새벽.

이미 결심을 굳힌 지 오래인,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 잠을 못 이루었을지 혹은 의외의 편안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단잠을 즐겼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심야 상영으로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박쥐'를 보며 감상에 빠져 있었더랬다.
영화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구세주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는 그 두 가지의 줄다리기에 대한 이야기로 비쳤다.
영화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아 들려온 대통령의 사망 소식은 그를 구세주로 여기고 있었던 나에게 묘한 연상을 불러일으켰다.
구세주는 the one이다.
노무현이 오로지 노무현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정치적인 계산보다는 진실성을 앞세우는 그의 의제 설정 내지는 정국 주도 스타일이다. 줄여서 '진실성'이라고도 하고, 진실성을 가진 정치인 노무현에게. 다른 정치인에게는 기대할하지 않고 오로지 노무현에게 기대하는 것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과 거짓말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노무현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정치적 역할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비록 선진화된 땅이라 하더라도 '거짓말의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무현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광신에 가까운 억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정치 입문부터 대통령 임기, 그리고 임기 후의 행보까지, 그가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행해 왔던 정치적 액션에는 언제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정황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태도는 항상 떳떳했던 반면, 그의 행동은 전략적으로 봤을 때 그에게 불리함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는 '바보'보다는 천치, 백치에 가까운 그였다.
또한 노무현의 정치적 수에 대해서 그의 정적들이 보이는 태도 역시 그의 진실성을 더욱 믿게 했다. 그의 정적들은 정치인으로서 합리적이지 못한 그의 예상치 못한 수를 맞음에 있어 크게 당황하면서 자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바람에 자신의 '진실'만 드러내고 이미지를 구긴 정치인이 그 몇이던가. 이것이 노무현이 대통령까지 할 수 있었던 그의 '정치적 전략'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내가 노무현 광신도 시절에 확립된 그에 대한 복음서에 불과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의 냉혹함을 알게 되면서 나의 시나리오는 정치인을 분석한 내용이 아니라 환타지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에게 주었던 믿음, 진실만이 결국은 승리한다는 치기 어린 신념을 상하기가 싫어서 억지로 억지로 나의 환타지를 유지했던 것이다.
세상 모두가 그를 욕할 때 온갖 빈약한 논리로 그를 옹호하면서...
박연차 게이트와 노무현 수뢰 혐의는 노무현에 대한 '신앙'을 결정적으로 뒤흔들었다.
과연 그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피해가지 않고 정면으로 대국민 사과를 올렸지만, 그가 해명한 내용이 완전히 진실일 경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노무현의 선의를 최대한 이해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토록 측근들의 수뢰 상황에 대해 까막눈일 수가 있었는가.
노무현.. 당신. 이것 설마 거짓말인 거야? 거짓말이라면,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영영 떠내 보낼 거야..
예수가 십자가에 못이 박힌 것처럼, 나는 때때로 용서받지 못할 소망-그의 죽음을 꿈꾸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한 나머지 어떤 경위로 사망에 이르게 되면, 그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고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면서 현재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름끼치도록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환상이다.
구세주를 믿는 것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함이지, 구세주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죽었다.
나는 그를 의심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그의 마지막 해명이 사실이건 거짓이건간에, 거짓말을 전략적으로 쉽게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로지 그의 진실을 추구하는 신념이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the one이 될 만한 자존심과 긍지를, 그리고 진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죽음이, 그가 대한민국의 정치인 중 the one임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나는, 노무현의 죽음을 꿈꾸었던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질책하며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난 구세주 따위 필요 없었다. 당신을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마음이란 건 변할 수도 있고 옮겨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당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금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세상이 변화하고 사람이 변화하는 이상 당연한 일이다. 나는 당신을 존경하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죽은 구세주보다는.. 그렇게라도 살아 있는 인간 노무현을 훨씬 더 원했던 것이다..
노짱...
꼭 그렇게, 그렇게 떠나야만 했습니까..
순교자 따위 필요 없었단 말입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어떻게 되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사람 삶 그리 길지도 않는 시간입니다.
미안합니다.
좀 더 빨리 알려 드릴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인간만이 신념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저 자연이라는 이름 아래 만들어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시간 속에서 이어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설계된 장치가 바로 본능이다. 어쩌다 보니 쓰잘데기없는 관념을 발전시켜버린 인간만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혹사하고, 때로는 소멸시키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역시 동물이다. 인간은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기 위한, 말하자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신념, 혹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 신념과 배치된다면 사람은 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 때 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절제, 억제하면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견딘다.
둘째, 자신의 신념이나 보편적 신념의 해석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왜곡시킨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두번째 길을 택한다. 인간이 아무리 인간 고유의 무언가를 발전시켜 왔어도, 궁극적으로는 욕망에 휘둘리는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욕망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게다가 욕망이란 다른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반면-마음을 다스린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니다!-신념이란 실체가 불분명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욕망에 부합하는, 외형은 같으나 내용이 다른, 그런 신념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러 모로 편리한 방법이다.
몸과 마음이 고단하지 않고 오래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정치인은 무탈하게 오래 살고 이 사람은 죽어야 했을까?
정치인은 직업의 특성상 공적인 윤리를 어기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것에 대해 일일히 죄책감을 느껴서는 사실 정치인을 하기 힘들다. 이런 것을 잘 정당화하여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이 한 일이 옳다고 세뇌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편히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자기 정당화가 필요하다!
나는 최초에 그를 첫째 길을 걷는 사람으로 믿었고, 얼마 후에는 그가 첫째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세뇌시켰다. 또 얼마 후에는 그가 첫째 길을 추구하는 것은 옳으나 그 길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바로 어제까지 그가 둘째 길을 걷게 되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왜냐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기에.
그러나 내 의심이 부끄럽게도, 그는 자신의 길을 벗어난 것조차도 용납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약한 사람이 자살을 한다지만.. 오히려 그는 너무나도 강했다.
다시 비보를 전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죽었다.
그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가 죽었다.
그러므로 더이상 국민은 대통령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이 아니라 이명박이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그 길'을 걸음으로서 우리는 목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행복한 삶이라는 목표를.
그러나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굴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는 죽음을 택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애썼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떠올리자. 많은 노무현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할 일은, 참담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그가 보여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당신 또한 그렇게 생각할 것으로 믿는다.
노짱.
인간으로 대해 주지 않고 무언가에 이용하려 한다고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돌아올 수 없어요.. 그런 이상, 우리는 당신에게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우리를 위한 일에 갖다 쓸 겁니다.
당신은 the one이 아니에요. the first one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지는 데에 성공할 것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청년기를 시작하게 했고, 청년기를 끝내게도 했으며, 또 다시 시작하게 했던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盧武鉉:1946.8.6~200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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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5/23 23:45 | └정치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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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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