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당숙부님은 옛날부터 집안의 인재라는 평이 자자했다. 자존심이 강하셔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그리 하지 않는 아버지께서 아무런 주저 없이 당신보다도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사람이 누군가 한 명 있다면 그게 바로 당신에게는 사촌 동생이 되는 당숙부님이었다.
우리 친가는 대가족의 일원이어서 집안 사이의 유대가 크게 중요시된다.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가까운 친척끼리는 자주 왕래가 없을 수 없기는 하다. 동시에 큰할아버지 댁이 되는 당숙 댁에는 자주 방문했었고, 바로 또래인 육촌 동생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그렇게 당숙은 결코 얼굴만 아는 정도의 그다지 상관없는 친척이 아니었지만, 원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내게 그 집안에 대한 특출난 반가움은 없었다. 게다가 타고난 반골 기질일지, 똑똑하고 잘 사는 사람들 중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그다지 없다는 어렸을 적의 편견에, 당숙의 직장에 대한 반감까지 있었기 때문에 일가라는 기본적인 호감 외의 감정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내게는 그 정도 존재였던 당숙이 별안간 나에게 있어 '우리 집안의 자랑'이 되고 깊이 존경하게 된 것은, 당숙을 직접 뵙지 않은 자리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를 서술한 책을 보던 중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민주화 운동에 불씨를 댕긴 이 사건은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가 최초로 보도하였다는 부분이었다.
신성호라면 당숙의 성함이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다름아닌 당숙의 직장이다. 그렇게 희귀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 쯤이면 이 기자가 나의 당숙부님임은 거의 확실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확인했고, 역시 그 기자가 당숙과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얼마나 기뻤었는지 모른다.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을 취재한 이가 당숙이었다면, 꼭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당숙이 당시에 얼마나 큰 사명감을 갖고 뛰는 기자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지위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럴 법한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어쩌면 이렇게 당숙의 과거에 의해서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불식되었을 법도 하다.
그 후 나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당숙이 아닌 언론인으로서의 당숙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숙의 성함을 기사에서 보기란 힘들었다.
사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당숙은 현재 중앙일보의 수석논설위원이다. 그러므로 당숙의 글은-어떤 것이 정확히 당숙의 글일지는 몰라도-작성자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사설에 훨씬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지위가 있는 기자일수록 일선에서는 물러나고 좀 더 무게감있는 활동-당숙은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이기도 하다-을 하기 마련이다.
곧 나는 당숙과 관련한 주변의 일에 있어 다소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당숙의 이름과 박열사의 이름을 포털에서 같이 검색하면, 대체로 나오는 기사가 이런 종류였다.
"신성호 기자의 특종이 민주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특종은 기자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도 민주화 운동을 발판으로 성장한 정치인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그가 기자실을 폐쇄하려 하나? (라고 쓰고 '우리 놀이터를 빼앗으려는 노무현 엿먹어라'라고 읽는다)"
당숙이 직접 한 얘기가 아니라고 해도 당숙의 이름을 팔아서 이런 식의 망발을 일삼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우스운 일이다. 내가 항상 분개해왔던 조중동의 사설들을 누가 썼으리라고 생각했나? 항상 규탄해 마지않는 김대중,류근일같은 사람들만이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신성호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글을 썼다. 조선일보마저 기피하는 악덕 언론인의 최고봉, 조갑제 역시 한때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뛰었던 기자가 아니었던가.
그래, 이제야 말한다. 철없을 적의 나는, 당숙이 중앙일보에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당숙의 기자 시절의 순수함을 대변하는-것 치고는 상당히 무게감이 큰-사실 하나를 알았고, 그것을 빌미로 나는 당숙을 호의적으로 볼 좋은 핑계를 하나 얻었을 뿐이다.
마침 시의 적절하게도, 홍석현이 노무현 정부에서 한자리 할 뻔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중앙일보라면 조,동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품었다. 당숙의 일까지 겹쳐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시선을 애써 돌린다고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거품을 물고 욕을 했던 글 중 모르긴 몰라도 하나, 두개 정도는 당숙이 쓴 글도 분명 있었으리라.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개인적인 사귐이나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간의 공존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견해 내에서의 일이다. 사고가 다르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용납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존에 대한 인정, 사람들이 말하는 똘레랑스의 범주에 속하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논조는 명백히 토론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그런 논조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에게의 개인적 감정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나는 '공사의 구분'이라는 아름다운 이유로 포장해 왔으나, 기실 그것은 '언행 불일치'였을 따름이다.
오늘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행동은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방해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나는 먼저 당숙에 대한 존경을 완전히 철회하는 바이며, 사회에서 결코 당숙의 도움을 받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당숙부님께 죄송한 말씀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직접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비겁하게 오로지 나의 공간을 빌어 혈육을 공격하는 무례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나는 앞서 말했듯 당숙과 개인적인 친분을 그다지 맺지 못했다. 그러나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숙과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 무른 마음을 품었는데, 당숙은 조카인 나를 결코 박대하지는 않을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당숙을 뵙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스스로를 다잡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폐해가 있다.
당숙은 개인자격이 아닌 중앙일보의 입장을 대변한다. 사설에 이름을 싣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한 신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한 개인을 매도하는 것은 경우에 맞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신성호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당숙은 공인, 유명인사라는 핑계를 빌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보도로 의기로운 그 이름을 내 스스로의 정체성에 조금이라도 비추고 싶은 모순된 욕망 때문이다...
...씨, 원래 이런 글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시국이 이런데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사무쳐, 요새 줄곧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 친가는 대가족의 일원이어서 집안 사이의 유대가 크게 중요시된다.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가까운 친척끼리는 자주 왕래가 없을 수 없기는 하다. 동시에 큰할아버지 댁이 되는 당숙 댁에는 자주 방문했었고, 바로 또래인 육촌 동생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그렇게 당숙은 결코 얼굴만 아는 정도의 그다지 상관없는 친척이 아니었지만, 원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내게 그 집안에 대한 특출난 반가움은 없었다. 게다가 타고난 반골 기질일지, 똑똑하고 잘 사는 사람들 중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그다지 없다는 어렸을 적의 편견에, 당숙의 직장에 대한 반감까지 있었기 때문에 일가라는 기본적인 호감 외의 감정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내게는 그 정도 존재였던 당숙이 별안간 나에게 있어 '우리 집안의 자랑'이 되고 깊이 존경하게 된 것은, 당숙을 직접 뵙지 않은 자리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한국의 현대사를 서술한 책을 보던 중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민주화 운동에 불씨를 댕긴 이 사건은 중앙일보의 신성호 기자가 최초로 보도하였다는 부분이었다.
신성호라면 당숙의 성함이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다름아닌 당숙의 직장이다. 그렇게 희귀한 이름은 아니지만, 이 쯤이면 이 기자가 나의 당숙부님임은 거의 확실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확인했고, 역시 그 기자가 당숙과 동일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얼마나 기뻤었는지 모른다.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을 취재한 이가 당숙이었다면, 꼭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당숙이 당시에 얼마나 큰 사명감을 갖고 뛰는 기자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지위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럴 법한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어쩌면 이렇게 당숙의 과거에 의해서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불식되었을 법도 하다.
그 후 나는 집안 어른으로서의 당숙이 아닌 언론인으로서의 당숙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당숙의 성함을 기사에서 보기란 힘들었다.
사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당숙은 현재 중앙일보의 수석논설위원이다. 그러므로 당숙의 글은-어떤 것이 정확히 당숙의 글일지는 몰라도-작성자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사설에 훨씬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지위가 있는 기자일수록 일선에서는 물러나고 좀 더 무게감있는 활동-당숙은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이기도 하다-을 하기 마련이다.
곧 나는 당숙과 관련한 주변의 일에 있어 다소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당숙의 이름과 박열사의 이름을 포털에서 같이 검색하면, 대체로 나오는 기사가 이런 종류였다.
"신성호 기자의 특종이 민주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특종은 기자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노무현도 민주화 운동을 발판으로 성장한 정치인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그가 기자실을 폐쇄하려 하나? (라고 쓰고 '우리 놀이터를 빼앗으려는 노무현 엿먹어라'라고 읽는다)"
당숙이 직접 한 얘기가 아니라고 해도 당숙의 이름을 팔아서 이런 식의 망발을 일삼는데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우스운 일이다. 내가 항상 분개해왔던 조중동의 사설들을 누가 썼으리라고 생각했나? 항상 규탄해 마지않는 김대중,류근일같은 사람들만이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신성호 기자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글을 썼다. 조선일보마저 기피하는 악덕 언론인의 최고봉, 조갑제 역시 한때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뛰었던 기자가 아니었던가.
그래, 이제야 말한다. 철없을 적의 나는, 당숙이 중앙일보에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당숙의 기자 시절의 순수함을 대변하는-것 치고는 상당히 무게감이 큰-사실 하나를 알았고, 그것을 빌미로 나는 당숙을 호의적으로 볼 좋은 핑계를 하나 얻었을 뿐이다.
마침 시의 적절하게도, 홍석현이 노무현 정부에서 한자리 할 뻔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중앙일보라면 조,동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품었다. 당숙의 일까지 겹쳐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시선을 애써 돌린다고 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거품을 물고 욕을 했던 글 중 모르긴 몰라도 하나, 두개 정도는 당숙이 쓴 글도 분명 있었으리라.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개인적인 사귐이나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간의 공존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견해 내에서의 일이다. 사고가 다르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용납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공존에 대한 인정, 사람들이 말하는 똘레랑스의 범주에 속하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논조는 명백히 토론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그런 논조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에게의 개인적 감정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나는 '공사의 구분'이라는 아름다운 이유로 포장해 왔으나, 기실 그것은 '언행 불일치'였을 따름이다.
오늘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행동은 민주주의 사회를 향한 방해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나는 먼저 당숙에 대한 존경을 완전히 철회하는 바이며, 사회에서 결코 당숙의 도움을 받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당숙부님께 죄송한 말씀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직접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비겁하게 오로지 나의 공간을 빌어 혈육을 공격하는 무례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나는 앞서 말했듯 당숙과 개인적인 친분을 그다지 맺지 못했다. 그러나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숙과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 무른 마음을 품었는데, 당숙은 조카인 나를 결코 박대하지는 않을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당숙을 뵙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스스로를 다잡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폐해가 있다.
당숙은 개인자격이 아닌 중앙일보의 입장을 대변한다. 사설에 이름을 싣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한 신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한 개인을 매도하는 것은 경우에 맞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신성호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당숙은 공인, 유명인사라는 핑계를 빌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보도로 의기로운 그 이름을 내 스스로의 정체성에 조금이라도 비추고 싶은 모순된 욕망 때문이다...
...씨, 원래 이런 글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시국이 이런데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사무쳐, 요새 줄곧 제정신이 아니다..
# by | 2008/06/26 21:05 | 정치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 떳떳하면.(피가 안 섞여서인지 몰라도)
그런거지요.
나는 분명히 말해서 신성호 기자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