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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하경복이라는 무장이 있었다.
다음은 윤승운 화백의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에 소개된 하경복에 대한 야사 한 토막이다.
세종 시절 북방 야인들과의 싸움에서 공이 컸던 무장 하경복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살면서 세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번째 고비는 젊은 시절. 하경복은 사냥을 나갔다가 커다란 호랑이를 만나고 말았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하경복은 엉겁결에 호랑이의 목을 껴안았다.
그때부터 호랑이와 하경복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호랑이는 계속 발버둥을 치고, 목을 놓았다간 대번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 절명의 상황. 그렇게 버티다가 연못을 발견하고, 하경복은 호랑이를 억지로 연못에 끌고 간 후 목을 물 속에 집어 넣었다.
두번째 고비는 2차 왕자의 난 때였다. 정안대군 방원과 회안대군 방간이 차기 왕위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방원이 우세하였고 방간과 친했던 하경복을 군졸들이 방원에게 끌고 갔다. 하경복은 방원에게 항변했다. "어찌 장수를 죽이려 하시오? 장수를 죽이는 일은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눈빛이었다던 방원, 하경복을 노려보더니 그의 용맹함을 알아보고 그를 특별히 살려준다.
-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에서는 이 때의 하경복을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무장으로 얘기하고 있으나, 그는 태종 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어떤 야사에서는 하경복을 궁궐 갑사로 말하고 있다.
세번째 고비는 북벌 때였다. 곧 태종에게 기용된 하경복은 북방의 방비 임무를 주로 맡게 되는데, 어느 날 야인들과의 싸움에서 하경복은 그만 너무 깊이 적진에 들어가게 된다. 완전히 포위되어 거의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말을 달리던 하경복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는, 달리던 말에서 번개같이 나무 속으로 뛰어올라갔다. 야인들이 쫓아왔지만 하경복이 타던 말만이 남아 있었고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 후 하경복은 밤을 틈타 조선군의 진지로 되돌아왔다.
그 후 하경복은 계속 중용되어 북방의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출처: 뉴스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위 컷은 세종이 북벌을 논의하는 장면인데, 총사령관의 추천에 하경복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장면을 읽었을 당시 참 오랜만에 다시 접한 이름이었다. 아쉽게도 이 이야기와 관련된 사실은 실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장면이 소개하는 북벌 당시(세종 14년) 하경복은 최윤덕,이징과 함께 판중추원사에 임명된다.
여튼 이쯤 되어야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할 법하다.
다음은 윤승운 화백의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에 소개된 하경복에 대한 야사 한 토막이다.
세종 시절 북방 야인들과의 싸움에서 공이 컸던 무장 하경복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살면서 세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번째 고비는 젊은 시절. 하경복은 사냥을 나갔다가 커다란 호랑이를 만나고 말았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하경복은 엉겁결에 호랑이의 목을 껴안았다.
그때부터 호랑이와 하경복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호랑이는 계속 발버둥을 치고, 목을 놓았다간 대번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절체 절명의 상황. 그렇게 버티다가 연못을 발견하고, 하경복은 호랑이를 억지로 연못에 끌고 간 후 목을 물 속에 집어 넣었다.
두번째 고비는 2차 왕자의 난 때였다. 정안대군 방원과 회안대군 방간이 차기 왕위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방원이 우세하였고 방간과 친했던 하경복을 군졸들이 방원에게 끌고 갔다. 하경복은 방원에게 항변했다. "어찌 장수를 죽이려 하시오? 장수를 죽이는 일은 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눈빛이었다던 방원, 하경복을 노려보더니 그의 용맹함을 알아보고 그를 특별히 살려준다.
- '서당골 호랑이 훈장님'에서는 이 때의 하경복을 어느정도 지위가 있는 무장으로 얘기하고 있으나, 그는 태종 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어떤 야사에서는 하경복을 궁궐 갑사로 말하고 있다.
세번째 고비는 북벌 때였다. 곧 태종에게 기용된 하경복은 북방의 방비 임무를 주로 맡게 되는데, 어느 날 야인들과의 싸움에서 하경복은 그만 너무 깊이 적진에 들어가게 된다. 완전히 포위되어 거의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말을 달리던 하경복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는, 달리던 말에서 번개같이 나무 속으로 뛰어올라갔다. 야인들이 쫓아왔지만 하경복이 타던 말만이 남아 있었고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 후 하경복은 밤을 틈타 조선군의 진지로 되돌아왔다.
그 후 하경복은 계속 중용되어 북방의 안정에 큰 기여를 했다.

출처: 뉴스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위 컷은 세종이 북벌을 논의하는 장면인데, 총사령관의 추천에 하경복이라는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 장면을 읽었을 당시 참 오랜만에 다시 접한 이름이었다. 아쉽게도 이 이야기와 관련된 사실은 실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장면이 소개하는 북벌 당시(세종 14년) 하경복은 최윤덕,이징과 함께 판중추원사에 임명된다.
여튼 이쯤 되어야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할 법하다.
# by | 2008/06/24 21:26 | 잡지식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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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정치토론이니 뭐니 뒤숭숭한 나날에 이 블로그도 나름 저에게 실용적인 혜택도 주는군요(응?)
시국이 너무 시끄러우니 오히려 할 말이 없더군요. 너무 명명백백한 일들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