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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비표준어 '바래', 정당한가?

관련기사: <무한도전>에 나오는 '~바래'는 외계어?

동사 '바라다'의 활용형 '바래'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무엇을 원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동사 '바래다'는 '바라다'의 잘못이다. 이와 같이 원래 단어의 모음이 좀 더 발음하기 부드럽게 전설모음화되는 현상은 아주 흔하다. 아기->애기, 고기->괴기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전설모음화된 단어들은 원칙적으로 비표준어이다. 그러나 새끼, 채비, 재미 등의 단어들처럼 전설모음화된 단어가 완전히 굳어져서 표준어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바래다'라는 말은 잘 쓰이지는 않으므로 표준어로 삼을 근거가 적다.

그렇다면 '~하길 바래' 할 때 쓰이는 '바래'는 어떨까?
이것은 현재 비표준어이다. 기사 본문에 의하면 '자라다'라는 동사가 '자라' '자람' '자랐다'로 활용되는 것처럼 '바라' '바람' '바랐다'로 활용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예에서 언급된 '자라'는, '자라다'의 어간 '자라'에 두루낮춤 일반형 어미 '아'가 결합된 형태이다. (자라아->자라 축약됨) 두루낮춤 일반형으로 활용한 동사들의 예로는 가다->가 서다->서 앉다->앉아 먹다->먹어 하다->해 되다->돼 등이 있다.
예에서 보다시피 두루낮춤 일반형 어미는 모음에 따라 '아' 대신 '어'가 쓰이는 경우가 매우 많다. 대체로 어간의 마지막 모음이 양성모음(ㅏ,ㅗ)이면 '아'가, 음성모음(ㅓ,ㅜ)이면 '어'가 쓰인다.
'바라다'의 경우 어간의 마지막 음절이 양성모음이므로 활용 '바라'가 쓰이는 것이 옳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와 '어'가 붙는 법칙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어미를 붙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널리 쓰이기 때문에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보다 '바래'를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이 원칙은 수정되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예외가 전혀 없다면 불규칙활용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을 터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다'의 두루낮춤 일반형은 '하'가 아니라 '해'다. 우리는 '나는 이것을 해'라고 말하지 '나는 이것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다'의 어간 '하'에 어미 '어'가 붙어서 전설모음화하여('ㅓ'는 전설모음은 아니지만 'ㅏ'보다 높은 곳에서 나는 소리이므로 전설모음 'ㅣ'에 더 가까운 소리이다) '해'가 된 경우이다.
'되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시 어간 '되'에 어미 '어'가 붙어 '되어'라고 활용되고, 이것의 축약형이 '돼'인 것이다. 이들은 모두 표준어이다. 'ㅏ'와 'ㅚ'는 모두 양성모음임에도 이런 결과가 생긴다.

(여기서 말하는 '해'는 '하여'의 축약형이 아니다. '하다'는 '하여'로의 활용에서 원래 '어'가 들어갈 자리에 '여'가 들어가기 때문에 여 불규칙동사로 분류된다. 여기에서 쓰이는 어미 '어'는 이제까지 말했던 두루낮춤 일반형이 아니라 이유나 경과를 나타내는 접속어미로, 이 경우의 '하여'->'해'는 '하여서'와 같은 뜻이다.)

여기까지 설명되었다면 '바라다'가 '바래'로 활용할 이유는 충분하다. '하다'나 '되다'와 같이 특수한 이유로 사용빈도가 높은 동사인 '바래'가, '바라'보다 발음이 부드러운 '바래'로 활용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활용형 '바라'는 구어에서도 문어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고 있는 죽은 표현이다.
'하다'와 '되다'의 용례를 비추어 봤을 때, '바래'라는 표현은 자주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문법적으로 활용의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바라'를 폐기하고 '바래'를 단일 표준어로 쓰이는 것조차도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예로 든 다른 활용, '바램','바랬다'를 살펴보자.
명사형 활용의 경우 '하다'->'함','되다'->'됨'으로 활용된다. '햄' '됌'이라는 단어가 없으므로 '바램'의 근거는 떨어진다. '바랬다'의 경우 '했다','됐다'라는 표현이 있으므로 약간 더 합당하나, '했다'의 경우 '하다'의 과거형 활용어미가 '았다'가 아닌 '였다'였기 때문에 일어난 활용이며, '됐다'의 경우 '되'+'았다'의 조합이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 두 경우 모두 '바랬다'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이런 근거를 반영하듯, '바람' '바랐다'는 '바램' '바랬다'에 비교할 때 쓰이는 빈도수가 비등하거나 혹은 더 우월하다. 그러므로 '바람'과 '바랐다'는 표준어로 하는 것이 옳겠다.


언어학자들은, 문법이 있고 나서 언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있고 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문법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명 표준어를 정의하고 나면 그것을 가능한 한 지키려고 하는 것은 미덕이다. 그러나 비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을 저속하고 천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언어의 본질을 망각한 행동이다. 표준어를 '가능한 한' '가급적' 지키려고 애를 쓰되, 그런 풍토가 어느 정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쓰이는 비표준어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기준으로 편입되어야 마땅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언어는 점차 변화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표준어를 지키려는 노력과 말의 변화를 표준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어느 한 쪽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 본문의 기사는 자극적인 제목을 써 가며 표준을 지키려는 입장에 지나친 가중치를 두었다고 여겨지므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기자 자신도 아직 사전에 정의되지 않은 '외계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을 상기하자. 이 행동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표준어에 집착할 것을 주장하는 기자의 제목에 쓰였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by 카나코 | 2007/05/10 01:01 | 잡지식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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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psancla at 2007/05/10 09:30
낄낄낄 이른 새벽에 이런 엄한 글을... 국어 문법에 대한 식견이 상당히 풍부하시군~~ 불쑥 들이댄 이유는 싸이에서 생일 2일 전이라구 알려주더군~ 싸이의 몇 안 되는 좆은 점 중의 하나지지~~? 생일 미리 추카하지지~~ 답글은 꼭 내 싸이 방명록에 남겨주시지지~~?
Commented by 알민 at 2007/05/10 09:44
맞아요. 언어의 변화를 무시하고 국어가 지니는 법칙을 들이대며 표준어를 지키려고 애쓰는 게 요즘 너무 심한 것 같아요.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7/05/10 14:56
오랜만에 덧글 답니다. ^^ 저도 남들 홈피에 덧글 달면서 '잘 되길 바라' 등의 말을 쓸 때마다...'내가 맞는 말을 쓰는데 왜 항상 어색한 걸까...-_-' 하는 생각을 항상 했더랬죠. 그래서 '-습니다'처럼 '바램'도 표준어가 되길 바라고 있었죠. 속시원한 글이었습니다. ^^ 나중에 여유 생기면 트랙백 할게요.
그리고...카나코님 덕분에 요 몇달 새 야오님이랑 많이 친해졌답니다. ^^ 좋은 분 알게 해주셔서 새삼 감사드려요~~
Commented by 카나코 at 2007/05/10 16:13
젠무침 / ㅋㅋ 요새 어떻게 지내냐? 몇 가지가 궁금하구만.

알민 / 어제 메신저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_ _) 무지하게 바빠가지고서리. 그런데 얼굴 아이콘 보고 바로 알민님이라고 알아챘지요. ^-^

아트걸 / 그랬군요. 좋은 일인데요! 그런데 정작 저는 기억도 못하실듯. 여전히 열심히 눈팅중이라고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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