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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만화의 전설을 예고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나의 점수 : ★★★★★


문득 떠오르는 노래 한가락.

"만화의 주인공은 얼마나 좋을까
거인나라 요정나라 별나라 다가보고
나도 가고싶어 나도 가고싶어"

미국 애니메이션 히맨의 국내방영 주제가이다.


만화라는 매체 자신의 특성을 주제가에서 언급했다는 것이 재미있는 점인데, 이런 주제가가 당시에 종종 있었다.
과연, 사람들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화만큼 탁월한 매체가 있을까.

이러한 만화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과거에 몇번 강조한 바와 같이, 바로 캐릭터의 힘이다. 만화나 다른 서사형 매체나 모두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점은 같으나, 그림이 직접적으로 서술에 활용이 됨으로서 독자가 자신의 이성의 힘으로 꾸며낸 인물상보다는 작가가 직접 말하고 있는 인물의 감성적 느낌에 더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만화가가 그림을 통해서 호소하는 이런 인물상이 바로 캐릭터이며, 캐릭터에는 글에 의한 묘사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풍부하게 녹아들어간다. 잘 그려진다면 독자들은 캐릭터에 깊은 이입을 느끼게 된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학습만화가 아니다. 그냥 '만화'다!
(이 말이 폄하의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은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미 확립되어 있는 사실을 알릴 때에는 설명하는 방식이 옳을지 모르나, 야사에 비해 오히려 조명받지 못했던 정사를 전면에 내세워 '재해석'하는 데에는 이 방식이 안성맞춤이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이 이 책의 의도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여기까지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실록>이 만화로서의 완성도가 아주 뛰어난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학습만화라 불리우는 매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만화가 아니었다. 캐릭터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대부분 캐릭터의 성격이 설명을 위한 보조도구로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할 내용에 따라서 캐릭터의 성격이 쉽게 변하기도 한다.
학습만화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같은 역사적 인물이 권수에 따라 쉽게 모습이나 말투가 바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실록>의 각 권들을 살펴보면, 여러 권들의 걸쳐서 하나의 역사적 인물이 얼마나 일관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1~4권에 걸쳐 계속 등장하는 태종의 캐릭터를 관찰하면 잘 알 수 있다.

여러 권수를 작업할 때 그런 점까지 신경쓰기 쉽지 않은데도 넓은 범위에 걸쳐 캐릭터가 거의 손상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실록>에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실은 저자가 훌륭한 만화가임을 입증하고 있다.

캐릭터의 일관성도 훌륭하지만, 나아가 캐릭터의 성격-엑스트라 내지는 한 계층을 나타내는 캐릭터들까지도-이 굉장히 감칠맛 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 정사를 깊이 탐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인간으로서의 그들의 모습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다음 인물들이 흥미를 끌었다.
공양왕, 정몽주, 세종, 황희, 세조, 유자광, 임사홍, 연산군, 남곤 등.)


이제야 반환점에 도달하려 하는 이 프로젝트에 감히 전설이라는 말을 예고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만화시장은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학습만화 시장은 여전히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만화시장에 희망이 있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런 학습만화들의 수요는 쉽게 지식을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교양서의 독자층이지, 만화의 독자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대부분의 학습만화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만화'가 아니다.

그런 현실에, 어떤 학습서보다도 유익하면서 동시에 '만화'이기에 성공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은 만화라는 매체가 그 어떤 매체보다도 훌륭하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태어난지 겨우 한세기 남짓한 이 매체가 현재 가장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매체가 되었다.
바로 그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되면 저자와 독자가 더욱 큰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실록>의 저자가 바로 우리 역사 바로알기를 주제로 채용하고 표현방법으로 만화를 써,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오고 있다는 것이 나를 고무시킨다.

by 카나코 | 2006/11/14 20:06 | 작품감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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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페코 at 2006/11/14 21:55
요즘은 그래도 웹툰이 있어서 만화 명맥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 같아요. 출판만화는 망해가고 웹만화 시장은 아직 개척되지 않았을 당시에는 정말 어찌나 막막하던지 :< 근데 웹툰은 주로 단발성 개그로 이루어진 형식이 많죠...(이 부분이 좀 아쉬워요) 출판만화의 스토리 전개 방식과 컷 배분, 연출 그리고 책이라는 매체ㅠㅠ!!!가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에 출판에서 미련을 버리기가 힘드네욤,,,
열심히 적다 보니. 포스팅과 전혀 관계가 없군요...ㄱ-
Commented by 카나코 at 2006/11/15 15:26
웹툰은 이제 발전기를 지나 성황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웹툰 출판이 일상화되었고, 출판만화에서 날리던 분들이 웹툰에 진출하고, 기존의 작가들 중에서 힘이 딸리는 분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또한 그다지 높지 않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걸 보면..
웹툰 자체의 성격이 즉홍적인 이유인지, 발전 사이클이 상당히 짧은 듯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만화의 힘은 4컷과 에피소드형식 내지는 장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4컷은 웹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서 에피소드나 장편이 좋은 분들이 웹툰에서도 가장 선봉에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페코 at 2006/11/15 17:29
제 개인적으로는 웹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예전 출판만화의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스크린톤 또한 검은 점이죠), 그리고 그걸로 완성되어진 스타일을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점... 정도 일까요ㅎㅎ. 흑백 시절에는 색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게 한계처럼 느껴졌었는데 막상 실현되고나니 예전이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_<;;;
Commented by 카나코 at 2006/11/16 19:09
하핫.. 예전에는 어쩌다 있던 칼라 페이지가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상당한 특전이었죠.
Commented by 아트걸 at 2006/11/28 16:02
제 옛날 홈페이지에 이 책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그건 일반 게시판 툴이라 트랙백 기능이 없네요. ^^;
해당글 주소는 http://pbbs.naver.com/action/read.php?id=artgirl_0&nid=2163 입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책 읽고 느끼는 지점이 저와 상당히 비슷하셔서 깜짝 놀랍니다. 웹에서 마주치게 된 분들 중에 간혹 이런 식으로 연이 닿아서 교류하게 되는 분들이 계신데, 그 때문에 웹질 하는 재미가 더 하는 것 같아요. :)
Commented by 카나코 at 2006/11/29 11:30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서 박화백님과 거의 비슷한 심정이었지요. ^^
9편에서는 문정왕후가 나오는데, 길이길이 남을 영웅은 못되더라도 호걸은 분명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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